작성일 : 17-02-27 06:07
[공연정보 없음(분류 - 연극)] 정갈하면서도 절제된 여운이 흐르다...연극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글쓴이 : 꿈살이 (1.♡.184.10)
조회 : 4,753   추천 : 0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으로부터의 감동은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처음 이 명칭을 접하며 느낀 건 '뭐지? 연극? 국악?'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리고서 떠오른 건 '판소리에 햄릿이란 작품이 어울릴까?'라는 의문이었다.

포스터엔 같은 옷차림의 네 명뿐이었다. 의문 투성이의 정체 불명 이 공연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다. '그냥 새로운 시도'겠거니 여겼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저녁, 공연장 앞에 섰다. 안내하시는 분에게 질문을 던졌다.

"공연 재미있어요?"
"네."
"네 명의 여자분이 나오죠?"
"아뇨. 세 명의 여자분과 한 명의 남자분이 배우예요."
"보셨어요? 어땠어요?"
"네. 한번 봤는데, 전 즐겁게 봤어요."
"요즘 대학로 공연은 대부분 애드립과 코믹 위주인데, 이 공연도 그런가요?"
"아뇨, 애드리브는 있지만, 코믹이 아닙니다."
"배우분들이 판소리도 하나요? 전문적으로 국악을 배우신 분이신가요?"
"네. 판소리도 하는데, 전공자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

더욱 궁금했다. 뭘까? 이 공연?

이윽고 공연장으로 들어서니 여러 기둥들로 엮인 가설 형태의 세트가 보였다. 마치 오래된 함선의 이층 침대 같은 형식의 구조물로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고, 우측 귀퉁이 한 쪽에는 각종 악기들이 모여 있었다.

막이 오르고 네 명의 배우들이 저마다 소리꾼의 목소리로 같은 의상을 입고 등장하며 나레이션과 대사, 그리고 소리를 한다. 햄릿의 스토리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배우들의 목소리에서 소리꾼의 기초가 제법 잡혀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판소리와 햄릿.

정적인 것에 동적인 것을 입혔다. 판소리는 지극히 정적인 문화, 여기에 연극을 덧씌워 동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혼자하는 판소리 형식을 네 명의 햄릿으로 구성하여 고정된 형식도 파괴한다. 세트로 고정된 무대 위에 달을 띄우고, 하얀 천을 드리워내려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을 동시에 표현한다.

동과 서의 만남이다. 서쪽의 문학작품의 대표랄 수 있는 세익스피어의 햄릿과 지극히 동쪽의 소리 세계인 판소리의 만남. 둘 다 문학이되. 전자는 살아 움직이는 연극이나 오페라 등으로, 후자는 목소리 하나만으로 들려주는 소리로 표현한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 보자면 햄릿은 비극의 대표작중 하나로서, 복수라는 한을 품고 있고, 판소리 역시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겪는 서민 대중의 핍박 설움과 양반들에 대한 현실 비판을 이야기와 소리로 들려주는 한을 품고 있다.

동과 서의 만남이되, 상통하는 점이 있는 셈이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는 서쪽 이야기를 동쪽 표현 도구로 보여준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네 명의 햄릿이 햄릿의 다양한 심정과 생각을 마치 대화하듯이 풀어 간다.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행동으로, 때로는 연주로......

무대 한 쪽 귀퉁이에서 고수도 되어 주고, 태평소 등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돋우는 효과음도 낸다. 음악과 반주자의 적절하고 절제된 참여가 있다.

무대 위에서 내려 오는 커다란 달, 동양적 음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치이다. 여기에다 탈과 하늘에서 내려 오는 하얀 천으로 그 표현의 극대화를 꾀한다. 무용 작품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 형식이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이 역시 동양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하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결정적인 것은, 서편제의 고장인 전라도의 사투리로 구수하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햄릿 서편제라고 할까? 그럼에도 동과 서가 뒤섞인 복잡함이 아닌 정갈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절제된 상차림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마무리는 동쪽 문화의 결정판을 차용하여 객석에 여운을 던진다.

모두 다 벗어버리고 떠나는 장례문화에, 선소리꾼의 서도 잡가로 애달픈 여운을 관객의 가슴속에 남긴다. 무대에서 배우들이 하나 둘 겉옷을 벗어두고 객석으로 소리하며 떠나는 장면은 영화 서편제의 소리로 길에서 한을 풀어내는 여운으로 오버랩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울림을 잘 표현한 시도와 배우들, 연출가 등 작품을 위해 함께 한 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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