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9-10 09:47
[공연정보 없음(분류 - 연극)] 베테랑 배우들의 참 연기가 돋보이는 정갈한 연극 오거리 사진관
 글쓴이 : 꿈살이 (1.♡.186.188)
조회 : 3,987   추천 : 0  
잊혀지는 단어중에 노망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는 "늙어서 망령이 듦. 또는 그 망령"이다.

어린 시절, 필자를 끔찍히도 좋아하셨던 큰 할머니가 계셨다. 명절 때면 언제나 창호 문에 덧댄 유리창을 통해 마을 어귀 버스가 도착하면 내다 보시곤 이내 버선발로 달려 나오셨던 할머니. 추운 날이면 당신 방으로 들이시어 화롯불을 쬐게 하신 후 이리저리 뒤적이시다 그 속에서 군고구마나, 군밤을 꺼내어 주시곤 하셨던 정 많으신 할머니셨다.

그 분께서 돌아기시기 2년전부터 소위 노망이 드셨다. 자식들이나 손자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수시로 소죽 쑨다고 하시며, 무시로 가마솥에 불을 때어 화재가 날 뻔한 적도 있고, 금방 식사를 하시고서도 밥 달라고 하신 적도 있었다. 무지하게 당신으로부터 사랑받은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며 참 안타깝고도 무서웠다. 그 땐 그것이 병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십년이 흐른 지금, 노망은 노인성 치매로 불린다. 당시만 하더라도 노망든 사람이라고 하면 심한 욕설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의 일종으로 본다. 알츠하이머병이라 해서 퇴행성 뇌질환으로 보고 치료와 요양을 병행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그런 소재를 바탕으로 가족들의 기억에 촛점을 맞추기보다는 같은 병으로 남편을 먼저 보낸 할머니의 사부곡이 연극 오거리 사진관이다.

극의 시작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가 기억이 잠깐 돌아왔을 때 사진관을 방문하여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주소도 장남의 전화번호도 모른 채 그 뒤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할아버직 떠나신 지 1년뒤, 할머니는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고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한번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설레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할머니 생일날, 할아버지의 등장과 가족들의 놀람과 그 대처를 둘러싸고 가족들간 신경전이 벌어진다. 알고 보니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신 할머니가 그렇게 생각하신 것일 뿐 이지만, 가족들은 열심히 할머니께서 눈치 채지 못하게 정상인이신 것처럼 대해준 것이다.

가족사진 한 번 찍지 못해 원통해 하신 할머니가 영정사진을 찍으러 같은 사진관을 들렀다. 영정사진을 찍고 거기서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발견하시곤 그것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어달라고 할 때 객석 여기 저기서 흐느낌이 들렸다. 그렇게 영정사진 두 점이 가족들에게 배송된다. 가족들은 다시한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부존재에 가슴 아파하며 무대의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진다.

아주 노련한 연기 배테랑들이신 배우 장기용, 이용녀, 이정섭씨 외에 상당한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들의 열연이 더욱 빛난 연극이었다. 특히 할머니역의 이용녀씨의 연기는 정말 실감하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가족들 앞에선 온전한 정신의 연기를 보이다가 어느새 정신을 놓은 연기와 목소리를 표현해 내시는 능력은 참 탁월하다. 거기에 참 순진하고 고운 맘씨까지 담아내셨다.

대학로 연극가에서 어느새 코믹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공연 막을 올리기 어려운 현실. 여기서 베테랑 배우들께서 가슴 먹먹한 소재를 가지고 공연을 해주는 참 든든하기만 하다.

롱런이 아니면 어떤가? 감동과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공연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 참 오랜만에 보는 고마운 연극이었다. 정갈하고 깔끔 담백한 한 상을 받아 먹은 감동이 그대로 가슴에 남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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