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다.근 4-5년만인가.. 오랜만에 밟아보는 소극장, 감회가 새로웠다. 난 우선 연극 관람 초보자이다.
관객 모독은 10여년 전부터인가 익히 들어왔다. 그때는 양동근이 주연을 했었더랬는데 배우의 이미지와 연극의 제목이 겹쳐 왠지 엉뚱하면서도 건방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어제 본 연극은 역시나 그러했다. 거기에 더해 파격과 도발을 덧붙일 수 있겠다.
네 명의 배우와 한 명의 무대 감독이 극 중의 극 형식으로, 주로 서사 없이 진행 되었다.
여러 가지 형식적인 파괴와 목청을 돋우거나 침 튀기는 대사들의 연속들..
각종 대사들은 이 연극이 초연된 수십년 전에도 상당히 파격적이었을 듯 싶다.
그리고 여러 대사들은 여러 가지로 실험적으로 관객에 대한 정의, 연극에서의 시공간의 의미 등등 희곡가로서의 작가의 현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고민과 사유들을 쏟아낸 듯한 느낌인데, 이를 배우의 동작에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 배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화되도록 어우러져 독일어 원문보다 우리말로 번역하고 정련하는 작업이 꽤 힘들었들 듯 하다. 단순 번역만으로는 안 되고 중의적 표현과 언어유희를 관객들이 듣고 느끼는 우리말로써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혹 독일어를 할 줄 알면 독일 원어로 보는 연극으로 보는 재미도 참 쏠쏠할 거 같았다.
서사와 사건이 없는 연극의 형태가 좀 낯설었는데 배우들은 (연극 초보 관람자인) 내가 본 대학로 공연 중에도 정말 내공이 실해 보이는 분이 두 분 있었다. 정재진, 기주봉 배우였는데 대학로 연극에서 의외로 연배도 상당해 보였는데 발성이나 몸가짐이나 연극에 녹아들어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특히 정재진 배우는 그냥 편안하게 평소 하듯이 하는 것 같이 보이면서도 물 흐르듯이 연극의 흐름에 율동처럼 섞여들어 보였다. 이 두 배우는 한 전문분야에서 수십년 갈고 닦아 융합된 통달이 느껴졌다.
네 배우의 극중 대사 및 분량은 비슷해 보였지만, 성숙미라든지 노익장이라든지 연륜이라든지 하는 아우라 때문에 이 두 배우가 극의 중심을 기둥처럼 받치고 있었고 나머지 두 젊은 배우도 열정적으로 연극에 임하는 것이 보였다.
젊은 남자 배우는 눈과 입술이 빨갛고 얼굴을 좀 하얗게 분장해 뱀파이어역으로도 잘 어울릴 듯 했다.
여자 배우도 열심히 했는데 소리를 지르면서 연기할 때 좀 더 익은 상태로 흘러나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들릴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듯 하다.
연극에서 보여지는 자유분방함, 표현의 자유같은 것은 존중하지만 극 중 여배우가 성추행 당하거나 속옷을 노출하는 모습이라든지 하는 자극적일 수 있는 장면은 극의 흐름상 꼭 들어가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외에도 여배우의 치마가 의자에 앉을 때마다 중간중간 올라가 좀 불안불안했었다.
대체로는 전반적으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연극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소리지르면서 모든 배우가 듣도 보도 못한 각종 욕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배우라면 시원하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하루의 스트레스가 쫙 풀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대망의 마무리는 분무기와 더불어 왕뿔테 안경의 진지한 무대감독이 대야에 물을 한 가득 떠서 관중석에 뿌리는 장면인데 대야라는 소품이 아주 한국적인 해석같아 코믹했다 (실제 독일 연극에서는 어떤 소품으로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하다).
극단 76이 40여년 이 연극을 상연해 왔다는데 앞으로도 좋은 예술 연극 많이 선보였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