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시를 지어 하룻밤 풋사랑을 읊기를
“아무리 달이 밝다하나 우리 두사람의 베게를 들여다 보진 못할것이다.
그런데 바람은 어이해서 신방을 가린 엷은 휘장을 걷어 올리는가” 라 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정주수령은 이 기생을 역마에 태워서 서울로 보냈다.
세종이 기생에게 명하기를 “너는 양녕대군이 읊은 시를 노래로 불러 익혀두라” 하였다.
양녕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유유히 서울로 돌아와 세종을 알현하였다.
세종: 잘 다녀오셨습니까. 제가 신신 당부한 말씀을 잘 지켜주셨는지요?
양녕: 물론입니다. 어찌 어명을 어기겠습니까? 한 번도 여색을 가까이 한 일 없습니다.
세종: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제가 형님의 노고를 덜어 드리고자 가무를 준비하였습니다.
양녕은 기생이 나와 노래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다.
그런데 가사를 들어보니 자신이 지은 시구가 아닌가. 깜짝 놀란 양녕은 그 자리에서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세종을 웃으며 뜰에 내려와 형님의 손을 잡고 위로하면서 그날 밤 그 기생을 양녕댁에 보냈다.
7. 나라에 큰 일이 있어, 모두 고기를 먹지 않는 기간이었다.
태종은 특별히 세종에게는 삼시 세끼 고기를 챙겨먹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충녕(세종)이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8. 집현전 학사들 마누라들이 집안 어르신들을 통해
단체 상소를 올림.
내용이 뭐였냐면
"님을 봐야지 후사를 보고 대대로 나라에 이바지를 할수 있습니다."
님을 봐야 뽕을 딸수 있다는 내용 ㅋㅋㅋㅋ.............
너무 잦은 야근으로 남편들 얼굴도 볼수 없자 마누라들이 뿔나서 집안 어르신들 볶아서 상소올림.